M x 神 1

<span class="sv_member">품</span>
@ffumla77
2026-03-21 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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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사람들은 새파란 하늘 아래에 드리운 평화에 안주하며 제각기의 삶을 영위한다.

비록 5년 전 발생한 초대형 게이트 데스 사이드와, 그 밖에서 민간인을 제물 삼아 학살을 벌인 그림 리퍼로 인해 에스퍼와 민간인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지만, 그 슬픔을 이겨내고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자 애썼다.

그리고, 평화의 주축이 되는 유니온.
스타레인 시 중앙에 위치한 본부는 오늘도 소란스러웠다.

게이트 전담팀 '헌터즈' 요원들은 최신 게이트 현황을 인이어로 보고 받으며 바쁘게 걸음을 옮기고, 서포트 팀 '이글아이'의 요원들은 홀로그램 차트를 들고 제각기 복도 구석에서 논의를 하거나 부상자를 이송하기 위해 급히 복도 끝을 내달렸다. 에스퍼 범죄 대응팀 '울프독'의 특급 요원 테리는 神의 곁을 순식간에 지나쳐 뛰어갔다.

여기 있는 모두가, 평화를 위해 기꺼이 한 몸을 던지고 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울프독 요원들이 주둔하는 일반 사무실 옆에 존재하는 작은 문에는 '특별수사팀 - 오르페우스'라고 쓰여있는 명패가 붙어있었다.

그림 리퍼의 동향과 범죄를 추적하기 위해 울프독 내부에서도 소수의 정예, 특급 요원으로만 구성된 특별수사팀.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원칙상 2인 1조였기에, 페어를 배정받은 神은 부서의 문고리를 잡고 들어섰다.


"…아, 오셨군요."


방에 들어서자 화이트보드가 가장 먼저 눈에 밟혔다. 그림 리퍼의 교주, '라멘타'와 빌런 '하피'의 최근 범죄와 동향이 마커로 적혀있고, 참혹한 현장과 증거 사진이 빼곡하게 붙어있는 보드에서 눈을 떼자, M은 어느새 에스프레소가 든 잔을 손가락 사이에 끼운 채 곁에 다가와 있었다.

"그러니까… 神? 실로…… 안타깝게 됐어요. 하필 나와 페어가 되다니."

아무리 임시 리더라 한들, 존경 보다는 꺼림칙하다 평이 자자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공허한 눈을 마주하는 것이 버거웠기에.


"그래도… 잘 부탁해요.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겠지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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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건조하고도 피로한 환영 인사에, 神은 주변의 무거운 공기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내 방긋 웃음을 짓으며, M에게 다가갑니다. 그녀는 M의 얼굴이 맞닿을 때 쯤에서야 멈췄다.


"그대가 이 몸의 페어인 M이로군! 잘 부탁하네! 이 몸은 神. 이 대지에서 태어나 인간들을 보살피는 존재!"


씨익, 호선을 그리는 입술. 오만하다고 해야 할지, 그저 순수한 광기라고 해야 할지. 오른쪽의 칠흑 같은 눈동자와, 가면 너머로 언뜻 비치는 왼쪽의 새하얀 눈동자가 기묘한 불균형을 이루며 M의 얼굴을 빤히 응시했다.


"뭐, 믿거나 말거나 하는 이야기지만 말이네! 여튼 잘 부탁하네. M!"


조금은 장난 스러운 말투. 그러면서도 M의 손을 꼬옥 잡으며 외치는 그녀의 말과 행동은 폭풍과도 같았다. M과 관련하여 떠들어지는 소문 또한 아는듯 혹은, 알지 못하는듯 아니 애초에 신경조차 쓰지 않는 듯 해보입니다. 이렇게 잔득 떠들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는지. 아차, 라는 말과 함께 "그러고 보니 말이네, 이제부터 나는 무얼 하면 되는 거지?"라고 말하며 고개를 갸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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훅 끼쳐오는 서늘한 나무 향과 침향이 섞인 독특한 향내. 눈앞으로 불쑥 다가온 얼굴에, M은 저도 모르게 반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손가락 사이에 위태롭게 끼워져 있던 작은 에스프레소 잔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짙은 갈색의 액체가 표면장력을 유지하며 찰랑거리는 모습에 잠시 시선을 두었다가, 그는 다시금 눈앞의 인영에게로 고개를 들었다.

스스로를 신이라 칭하는 여자. 오만하다고 해야 할지, 그저 순수한 광기라고 해야 할지. 칠흑 같은 오른쪽 눈동자와 가면 너머로 언뜻 비치는 새하얀 왼쪽 눈동자가 기묘한 불균형을 이루며 자신을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소문으로만 듣던 기인이었다. 측정 불가 등급의 에스퍼, 유니온의 골칫덩이이자 비장의 무기. 긍정적이고 외향적이라는 프로필 따위로는 전부 설명되지 않는, 혼돈 그 자체 같은 존재가 제 파트너라니.

그는 아주 희미하게, 입꼬리 한쪽만을 끌어올려 미소 아닌 미소를 지어 보였다. 태풍의 눈처럼 고요한 자색 눈동자가 상대를 가만히 관찰했다. 가면의 위치, 느슨하게 묶인 허리띠, 바람 한 점 없는 실내에서도 살랑이는 듯한 소매 자락까지. 모든 것이 비현실적인 그림 같았다.

"믿거나 말거나, 라… 재미있는 이야기네요. 신이라. 그럼 저는 당신의 사도라도 되는 걸까요."


나긋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는 어떠한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았다. 그저 관찰하고, 분석하고, 눈앞의 현상을 이해하려는 듯한 건조함만이 배어있을 뿐. 그가 당신의 손에 붙잡혔을 때, 손등 위로 도드라진 푸른 셔츠의 소매 끝이 살짝 구겨졌다. 체온이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차가운 손이었다. 혹은, 그렇게 느껴지도록 자신을 위장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M은 붙잡힌 손을 빼내려 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마주 잡아주지도 않았다. 그저 당신의 손아귀에 제 손이 담겨있는 광경을 무심하게 내려다볼 뿐이었다. 마치 자신의 신체 일부가 아닌, 타인의 것을 보는 듯한 이질적인 시선이었다.


"앞으로 뭘 해야 하냐니… 글쎄요. 일단은, 서로를 알아가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페어라는 건 결국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 관계니까요. 뭐, 저 같은 걸 신뢰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렇게 말하며 그는 남은 손으로 에스프레소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쓴맛이 혀를 감쌌지만, 그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마치 맹물을 마시는 사람처럼. 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는 소리가 유난히 사무실 안을 작게 울렸다. 달칵, 하는 무기질적인 소음.

"일단은… 저기 앉으시죠. 그림 리퍼에 대한 브리핑부터 시작해야 하니. 당신도 그들의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겠죠. 우리 '울프독'의 주적이니까."

그는 턱짓으로 화이트보드 앞의 낡은 가죽 소파를 가리켰다. 벽 한쪽을 가득 채운 화이트보드에는, 빌런들의 사진과 활동 반경, 예상 은신처 등이 붉고 검은 마커로 어지럽게 표시되어 있었다. 그 중심에는 가시면류관을 쓴 자애로운 얼굴의 남자, 교주 라멘타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M은 그 사진을 잠시 응시하다가, 이내 당신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등 뒤로 들어오는 복도의 형광등 불빛이 암록색 긴 머리카락의 테두리를 부옇게 밝혔다. 퇴폐적이고 어딘가 위태로워 보이는 분위기. 왜 다른 요원들이 그를 꺼리는지, 아주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그는 살아있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너무나도 정교하게 만들어진 인형에 가까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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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자네가 나의 사도가 되어준다는것인가! 하하, 이 몸 사도 같은건 한번도 들여보지 않았지만 그거 재미있군!"

사도. 그 말을 듣자 神는 흥미롭다는 듯 웃으며 말합니다. 응, 확실히 최근엔 사도라던가 신자라던가 그런걸 만들지 않은지도 오래되었으니까요. 애초에 일반인 상식이 부족한   神로서는 새롭게, 자신과 함께할 이의 관계가 재미있다는 듯 떠들기 시작합니다.

"그래그래, 페어라는 것은 서로 알아가는것 부터 시작하는거지! 그것도 좋아! 그래서 자네는 무엇을 좋아하지?"

그 말을 끝냈을 때, 달칵. 하고 M이 내려놓은 컵의 소리가 울립니다. 그 안에 든 액체는  神의 흥미를 끌기엔 중분했습니다. 그러니까, 이건...

"검정의 물. 흠흠, 요즘 사람들은 이것을 '커피'라고 부르던가? 그래! 자네는 커피를 좋아하구만! 응응 잘아두겠네."


"아차, 그래 자네의 말이 맞지. 그림 리퍼." M의 말을 듣고 나서야, 처음 유니온에 들어왔을 때, 들었던 무언가 이상한 집단에 대해 떠올립니다. 그림리퍼, 어떤 종교 단체라 그랬던가,  神이라고 불리는  神이지만 그런 종교 단체에 대한 호불호는 따로 없었기 때문에 조금은 흥미롭기도 하면서도 자신과는 다른 세계라는 선이 긋어져 있습니다.


"그래 그래 그거, 그래서 그 놈은 무엇이냐?"


그럼에도 앞으로 상대할 집단. 그렇기 때문에 흥미가 있든 없든 알아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형식적인 물음을 던지며 M이 건내주는 사진을 봅니다. 가시면류관의 자애로운 남자의 얼굴. 요즘의 사람들은 저런 것을 좋아하는 것일까? 새상이 많이 변했군. 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그녀가 神이기 때문인지, 혹은 조금 바보같아서 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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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손아귀에 힘이 실리는 순간, M은 잡혀 있던 제 손을 무감각하게 내려다보았다. 사도, 좋아한다, 커피. 폭풍처럼 쏟아지는 단어들이 귓가를 스쳤지만, 그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붙잡지 않았다. 그저 낯선 체온과 힘이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다는 감각만이 선명했다. 까르륵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는 텅 빈 사무실의 공기를 기묘하게 채웠다. 활기차고, 생명력 넘치고, 그래서 자신과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소리였다.

그는 당신의 질문에 곧바로 대답하는 대신, 잡혀 있던 손을 아주 느리고 부드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빼냈다. 마치 물이 흘러가듯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손을 빼낸 그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소파에 앉은 당신의 맞은편 테이블에 가볍게 걸터앉았다.

"제가 뭘 좋아하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금방 잊어버릴 테니까요. 그저… 일이 끝나면 마시는 에스프레소 한 잔의 쓴맛이, 아직 내가 살아있다는 걸 느끼게 해줄 뿐이죠."

나긋한 목소리는 여전히 어떠한 감흥도 담고 있지 않았다. 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서류 뭉치 중 가장 위에 있는 것을 집어 들었다. 라멘타의 사진이 박힌 프로필 용지였다. 손가락으로 사진의 얼굴을 가볍게 톡, 톡, 두드리는 그의 자색 눈동자가 서류의 글자들을 훑어 내렸다.

"이 자, 코드네임 라멘타. 본명, 나이, 출신… 대부분이 불명입니다. 그림 리퍼의 교주이자, 스스로를 '새붉은 재앙의 목소리'라 칭하고 있죠."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당신의 반응을 살피듯 고개를 들었다. 가면과 머리카락에 가려진 왼쪽 눈 대신, 모든 것을 꿰뚫어 볼 듯한 칠흑의 오른쪽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의 시선은 그 눈동자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찾으려는 듯 깊고 서늘했다.

"능력은 블러드 메리. S급입니다. 자신의 혈액, 혹은 타인의 혈액을 매개로 모든 것을 조종하고 무기로 만듭니다. 데스사이드 현장에서 확보된 소량의 혈액 샘플로 반경 1km를 초토화시킨 전적이 있죠. 더 끔찍한 건, 그가 게이트를 소환하고 조종할 수 있다는 겁니다. 불완전하고 작은 규모지만, 그 자체로 유니온에게는 최악의 위협이죠."

담담하게 사실을 나열하는 목소리는 마치 먼 나라의 비극을 전하는 뉴스 앵커처럼 무심했다. 그는 들고 있던 서류를 당신 앞의 테이블 위로 가볍게 던졌다. 종이가 미끄러지며 당신의 무릎 근처에서 멈췄다.

"그림 리퍼는 단순한 빌런 집단이 아닙니다. '멸망'을 교리로 삼는 사이비 종교죠. 몬스터를 신의 심판으로, 에스퍼를 그 심판을 집행하는 사자로 믿어요. 그들은 다가올 종말을 기쁘게 맞이해야 한다며, 게이트가 열릴 때마다 무고한 시민들을 '제물'이라 부르며 학살합니다. 유니온의 방침과는 정반대에 서 있는, 우리 울프독이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할 암적인 존재들."

M은 테이블에서 내려와 화이트보드 앞으로 걸어갔다. 그는 라멘타의 사진 옆에 붙어있는, 푸른 머리카락을 길게 땋고 익살스럽게 웃고 있는 남자의 사진을 손끝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이쪽은 하피. 최근 가장 활발하게 날뛰고 있는 놈입니다. 능력은 템페스트. 공기를 조종하고, 자신의 신체를 S급 몬스터인 하피로 변이시킬 수 있죠. 라멘타의 충실한 개처럼 움직이며 현장을 어지럽히는 게 주특기입니다."

그의 긴 암록색 머리카락이 움직임을 따라 부드럽게 흔들렸다. 창백한 목덜미와 셔츠 깃 사이의 피부가 잠시 드러났다 사라졌다. 그는 당신을 돌아보지 않은 채, 그저 화이트보드 위의 정보들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그 모습은 어딘가 지쳐 보이기도, 혹은 이 모든 상황이 지겹다는 듯 보이기도 했다.

"우리의 첫 번째 임무는, 이 하피 놈의 뒤를 밟는 겁니다. 그의 동선을 파악하고, 그림 리퍼의 아지트를 찾아내는 것. …이해가 되셨나요,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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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는 M의 말에 동그렇게 눈을 뜨며 놀랩니다.


"왜 내가 금방 잊을거라 생각하나?"

神는 M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 다는 듯 고개를 비스듬하게 세웁니다. 그 순간 M의 눈에 가면으로 가려진. 그녀의 다른 한쪽의 눈동자가 살짝 보입니다. 흰색의 눈동자. 반대 쪽에 있는 검정색의 눈동자에 비하면 꽤나 이질적으로 보이는 새하얀색의 눈동자가 거울처럼 M의 모습을 비춰보고 있습니다.

"이 몸은 神이니라, 이 몸. 자신의 페어가 되는 이의 좋아하는 것을 잊을리 없지 않느냐."

그녀는 마치 M이 말이 잘못 되었다는 듯 다그치며 정정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은 神라고. 그렇기 때문에 잊지 않는다고. 오만하면서도 이질적인 이야기입니다.

말을 끝마치고 나서야, 神는 가면이 삐뚤어진 것을 눈치채고는 '아이코야' 라고 소리를 내면서 가면을 만져 새 하얀 눈동자가 잘 안보이도록 가립니다.


"허허, 미안하네 미안하네, 지금 그, 그림 리퍼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지. 이야기 해주게냐."

그리고는 의도적으로 이야기를 돌리며, M이 해주는 그림리퍼에 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멸망'을 교리로 하는 사이비. 몬스터를 신의 심판으로.  神이라고 불리는  神으로서는 그들의 심리는 잘 알 수 없지만, 인간인 그들이 그렇게 믿는다면 그건 그거대로 이유가 있을거라 생각하긴 하지만... 그래도 무구한 사람을 제물로 삼는 것은 조금 불편합니다.

"이해했네 이해했네, 그러니까 우리는 그 사이비 집단의 아지트를 찾기 위해 사이비 집단의 수하의 뒤를 쫓으면 되다는것 아니냐."

神은 약간 무심한 눈으로 여태 화이트 보드를 보고는 결론만을 바란다는 말투로 M을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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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말에 M의 움직임이 찰나의 순간, 멈추었다. 신이기 때문에 잊지 않는다. 그 논리 비약에 가까운 선언은 어이가 없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묘한 일관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당신의 말을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았다. 그저 화이트보드를 가리키던 손가락을 천천히 내리며, 당신을 향해 몸을 돌렸을 뿐이다.

그 순간, 당신의 고개가 움직이며 가면이 비스듬히 틀어졌다. 언뜻 드러난 새하얀 눈동자. 안광 없이, 모든 빛을 흡수하는 듯한 칠흑의 오른쪽 눈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그 공허한 흰색은 M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관찰자의 버릇이 무의식적으로 발동했다. 저 눈은 선천적인 것일까, 아니면 후천적인 사고의 결과일까. 능력의 발현과 관련이 있는 걸까. 수많은 가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미동도 없이, 그 기묘하고 아름다운 부조화를 뇌리에 새길 뿐이었다. 당신이 황급히 가면을 바로잡는 모습까지도, 그는 놓치지 않았다.

"…네. 맞습니다. 그렇게 간단하게 이해해주시니 다행이네요."

목소리는 평소와 같이 나긋했다. 그는 다시 테이블 쪽으로 걸어와, 당신이 던져주었던 서류 옆에 놓인 다른 파일을 집어 들었다. 표지에는 ‘하피(Hapi) - 최근 동선 분석’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파일을 펼쳐 당신에게 보여주었다. 그 안에는 여러 장의 위성 사진과 CCTV 캡처 화면, 그리고 손으로 그린 약도 따위가 복잡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이게 지난 2주간 이글아이 팀에서 수집한 하피의 이동 경로입니다. 일정한 패턴은 없지만, 유독 자주 출몰하는 지역이 몇 군데 있죠. 서쪽 레인웨이 로드 외곽의 슬럼가, 그리고… 북쪽 오로라웨이의 고급 주택가. 극과 극의 장소들이라 연관성을 찾기 어려웠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손가락으로 사진 몇 장을 짚었다. 슬럼가의 허름한 건물 뒤편에 그려진 그래피티와, 고급 주택가의 담벼락에 몰래 새겨진 작은 문양이 화면에 잡혀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전혀 다른 그림이었지만, 자세히 보면 특정 부위의 곡선이나 마무리가 기묘하게 닮아 있었다. 관찰의 귀재인 그만이 간파할 수 있는 미세한 유사성이었다.

"그가 남긴 표식입니다. 과시욕이 강한 놈이라,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듯 이런 흔적을 남기더군요. 이 표식이 가장 최근에 발견된 곳은 레인웨이 로드의 폐극장 근처입니다. 아마 오늘 밤에도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요."

M은 파일을 덮어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당신을 가만히 응시했다. 창백한 얼굴 위로, 둥근 은테 안경 너머의 자색 눈동자가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처럼 고요했다. 그는 마치 당신의 의중을 떠보는 듯한, 혹은 시험하는 듯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오늘 밤, 그곳으로 갈 겁니다. 당신의 그 대단한 능력, 구경할 수 있는 좋은 기회겠군요. 준비는 알아서 하시는 게 좋겠어요. ‘신’이라면 그 정도는 문제없으시겠죠."

말은 정중했지만, 그 안에는 명백한 도발의 가시가 숨어 있었다. 그는 당신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몸을 돌려, 창가에 놓인 자신의 낡은 코트를 집어 들었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는 스타레인의 풍경이 창밖으로 펼쳐져 있었다. 빌딩 숲 사이로 노을이 붉게 번져가는 모습은, 마치 거대한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만 같았다. 그는 그 핏빛 풍경을 무감하게 바라보며, 당신의 반응을 기다렸다. 첫 임무를 앞둔 긴장감 따위는 그의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모든 것이 지겹고, 이 무의미한 연극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는 배우처럼, 그는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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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식을 남기는 행위 그것은 마치 "짐승이 하는 행동과 똑같구나." 神는 M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합니다. 보통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하면 숨기는 것이 정석이겠다만, 이 자는 그런것도 없고 마치 이곳이 자신의 구역인것 마냥 문양을 모두가 알도록 그려내고 있는 모습이 神의 눈에는 짐승이 영역을 표시하는 것과 동일하게 보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M의 설명에 조금 곤란하다 생각합니다. '나의 능력으로는 미행에 도움이 되진 않을텐데.' M은 도발의 의미로 한 말이겠지만, 神는 그런 것은 제대로 생각하지 않고 그에게 별 도움이 되지 못할 부분이 신경 쓰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고민해봤자 인가... 처음으로 생긴 페어가 이몸에게 의지를 한다는데, 그렇다면 되든 안되든 이몸이 확실히 실력 행세를 하는 수 밖에!' 그렇게 생각을 끝마친 神는 큰 소리를 칩니다.


"이몸에게 맡기게나!"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M에게 다가 서며 당연한 듯 말합니다.


"안내하게나!"

이 도시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은 神로서는 이 곳의 지리를 모르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꽤나 당당하게 M을 보며 말합니다. M이 무언가 말을 한다 해도 전부 무시하고 그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기로 이미 마음을 다 잡은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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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갑작스러운 기세에 M의 미간이 아주 미세하게, 거의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찌푸려졌다. 자신만만하게 외치며 성큼 다가서는 당신의 모습은, 마치 소풍을 앞둔 어린아이처럼 들떠 보였다. 그 순수한 열의가 M에게는 도리어 이해할 수 없는 기행으로 비쳤다. 그는 당신의 외침에 대답하는 대신, 무표정하게 걸치고 있던 코트의 옷깃을 여몄다.

"안내라… 뭐, 틀린 말은 아니군요."

그는 짧게 중얼거리며 당신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더 이상 이 사무실에서 지체할 이유는 없다는 듯, 그는 망설임 없이 문 쪽으로 향했다. 당신이 따라오는지 확인조차 하지 않는 걸음이었다. 복도를 지나 엘리베이터 앞에 선 그는, 내려가는 버튼을 누르고는 벽에 등을 기댔다. 굳게 닫힌 입술, 텅 빈 자색 눈동자는 엘리베이터의 층수를 알리는 숫자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에게 당신의 존재는 아직 함께 임무를 수행해야 할 '변수'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띵’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그는 말없이 안으로 들어섰다. 1층 버튼을 누른 그의 옆으로, 당신의 서늘한 나무 향기가 희미하게 스며들었다. 밀폐된 공간 안에서, 두 사람 사이의 침묵은 더욱 무겁게 내려앉았다. 유니온 본부의 로비는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며 분주하게 오가는 요원들로 붐볐다. M은 그 인파를 능숙하게 헤치며 밖으로 나섰다. 그의 긴 암록색 머리카락이 인파 속에서 유독 눈에 띄었다.

본부 밖으로 나오자, 스타레인의 차가운 저녁 공기가 훅 끼쳐왔다. 빌딩 숲 사이로 내려앉은 노을은 도시 전체를 핏빛과 주황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M은 주차장으로 향하는 대신, 대로변의 정류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걸음은 빠르고 망설임이 없었다. 마치 당신이 당연히 따라올 것이라 확신하는 듯했다.

"레인웨이 로드까지는 이걸 타고 가는 게 빠릅니다. 자가용은 쓸데없이 눈에 띄기만 하니까요."

그는 레일 위를 미끄러지듯 달리는 자기부상 트램을 가리키며 말했다. 시민들의 주요 교통수단인 트램은 유선형의 날렵한 외관을 자랑했다. 잠시 후 도착한 트램에 올라탄 그는, 창가 쪽의 비어있는 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당신이 옆에 앉든, 다른 곳에 앉든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그는 창밖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도시의 풍경에 시선을 던졌다. 화려한 네온사인이 번져가는 밀키웨이 로드를 지나, 점차 건물의 높이가 낮아지고 거리가 어두워지는 레인웨이 로드로 접어들었다.

창문에 비친 당신의 모습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가면으로 반쯤 가려진 얼굴, 붉은 브릿지를 넣은 긴 백발,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기묘한 분위기. 그는 당신을 직접 돌아보는 대신, 창문에 비친 상을 통해 조용히 관찰했다. 저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정말로 스스로를 신이라 믿는 걸까. 아니면 그저 과대망상에 빠진 위험한 능력자인가. 그의 머릿속은 수많은 질문으로 가득 찼지만, 겉으로는 그저 지루한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볼 뿐이었다.

폐극장 근처의 정류장에서 내리자, 주변의 공기는 한층 더 스산해졌다. 화려했던 극장가의 불빛은 모두 꺼지고, 낡고 버려진 건물들이 유령처럼 서 있었다. 데스사이드의 비극이 남긴 상흔이었다. M은 골목 안쪽을 가리켰다.

"저쪽입니다. 이제부터는 소리를 내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당신의 그 대단한 능력을 보여주기 전에, 하피의 먹이가 되고 싶진 않으실 테니."

그의 목소리는 밤공기처럼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말과 동시에 몸을 낮춰,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잠입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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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을 따라나온 神는 그를 따라 정류장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그가 가리키는 자기부상 트램을 처음 보는 물건을 보는 아이 마냥 기웃거리며 '오오...' 하는 추임새를 넣습니다. M의 설명을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탑승을 하자, 아차! 하는 소리와 함께 그를 따라탑니다. 트램에 탑승한 神는 곧바로 M의 바로 앞자리. 창가 자리에 앉아 창 밖을 구경합니다.


수 많은 네온, 높은 건물들. 그녀에게 있어서 이런 풍경은 익숙하지 않은, 흥미로운 구경거리 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건물이 점점 낮아지면 낮아질 수록 그녀가 아는 풍경과 비슷한지 흥미를 잃어버리고는 그대로 자리를 옳겨 M의 옆에 있는 좌석에 앉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 까, 폐극장 정류장에 도착합니다. 이번에도 M의 뒤를 졸졸 따라 트램에서 내립니다. 그리고 화려함이 사라진 극장가의 모습도 신기하다는 듯 두리번거리다가 M의 목소리를 듣고는 그가 가리킨 골목 안쪽을 바라봅니다.


"호, 이곳에 목표가 나온다는 그?"

M의 경고가 들어간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는지 '하피라는 것은 인육이라도 하는 것인가. 아직도 세상은 흉흉하군.' 조금은 이 시대가 안타깝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그와 함께 잔입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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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옆자리로 옮겨 앉자, M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창밖의 어둠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바로 곁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나무 향기와 고풍스러운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는 그의 모든 감각을 자극했다. 그는 그저 무시했다. 당신의 기행에 일일이 반응하는 것은 에너지만 소모할 뿐이라는 것을 이미 깨달은 듯했다. 폐극장에 도착해 당신이 흥미롭다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동안에도, 그는 오직 목표에만 집중했다. 당신의 혼잣말은 그의 귀에 닿았지만, 그는 그저 어둠 속으로 한 걸음 더 내디딜 뿐이었다.

폐극장의 정문은 거대한 쇠사슬로 굳게 잠겨 있었다. M은 망설임 없이 건물의 옆면을 따라 어둠 속으로 파고들었다. 이내 쥐구멍 같은 직원용 통로를 찾아낸 그는, 먼지 쌓인 철문을 소리 없이 열고 안으로 스며들었다. 끼익, 하는 마찰음조차 내지 않는 그의 움직임은 마치 그림자 그 자체 같았다. 안으로 들어서자 코를 찌르는 것은 짙은 먼지와 곰팡이, 그리고 무엇인가 썩어가는 듯한 비릿한 냄새였다. 달빛이 깨진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을 통해 비스듬히 쏟아져 들어와, 텅 빈 객석과 무대 위를 기괴한 무늬로 수놓고 있었다.

M은 허리를 숙여 자세를 낮춘 채, 벽을 따라 조심스럽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낡은 카펫이 깔린 바닥은 발을 디딜 때마다 눅눅한 먼지를 피워 올렸다. 그는 당신이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하려는 듯,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자색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며 당신의 기척을 살폈다. 이내 당신이 소리 없이 뒤따르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전진했다. 그의 손이 허공에서 짧고 간결한 수신호를 그렸다. ‘조용히, 그리고 내 뒤를 따를 것.’ 이라는 의미였다.

로비를 지나 극장 내부로 들어서자 공간은 훨씬 더 넓고 어두웠다. 수백 개의 객석 의자들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유령처럼 줄지어 있었고, 거대한 무대 위에는 찢어진 붉은 벨벳 커튼이 너덜너덜하게 매달려 있었다. M은 객석을 가로지르지 않고, 가장자리의 통로를 따라 무대 뒤편으로 향했다. 배우들이 사용했을 분장실과 소품실이 즐비한 복도였다. 깨진 거울 조각들이 바닥에 널려 있고, 낡은 의상들이 마네킹에 입혀진 채 섬뜩한 실루엣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때, M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의 시선은 한쪽 벽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곳에는 얼마 전에 그려진 것이 분명한, 선명한 표식이 남아 있었다. 슬럼가와 고급 주택가에서 발견된 것과 동일한, 기묘하게 뒤틀린 날개 문양의 그래피티. 하지만 이번에는 무언가 달랐다. 그래피티의 물감이 아직 다 마르지 않은 듯, 끈적한 액체처럼 벽을 타고 천천히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부에서는… 희미하고 불길한 에너지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의 능력이 남긴 잔향입니다. 가까이 있어요."

그가 거의 입술을 움직이지 않고, 속삭이듯 말했다. 목소리는 공기 중에 녹아들 듯 낮고 차분했다. 그는 표식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 순간이었다.

…쿵.

위층에서, 무언가 무거운 것이 바닥에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M의 몸이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 그는 뻗었던 손을 거두고, 소리가 들려온 위쪽, 극장의 2층 발코니석 방향을 향해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의 창백한 얼굴 위로 처음으로 명백한 긴장감이 떠올랐다. 둥근 안경 너머의 자색 눈동자가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쥐 죽은 듯한 정적 속에서, 두 사람의 숨소리만이 유일한 소음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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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는 M이 주는 수신호를 보고 고개를 갸우둥 합니다. 아무래도 사람과 일반적인 소통...이랄까, 교류가 부족한 神의 입장에선 저런 수신호는 처음 보는 몸짓이며, 이해하기 어려운 동작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아까, 그가 말했던... 소리를 내면 잡아 먹힌다는 말을 떠올리고는 잡아먹히면 곤란하니까... 나중에 물어보고 지금은 그를 따라갈 수 밖에 없는건가? 그렇게 생각하며 그를 뒤따라갑니다.


그렇게 조용히 M의 뒤를 따라가다 멈춰버린 M의 등 뒤에서 빼꼼하고 나와 그가 보고 있는 벽면을 봅니다. "호," 그녀도 모르게 그런 추임새를 한번 말하고는 문양을 자세히 봅니다. 일반적인 영역 표시라고 하기에는 어쩐지 예술처럼 보이는 문양. 하지만 그것이 단순 예술이 아니라는 것도 어딘가 느껴집니다. 


그 후 들려오는 M의 말에 가까이? 어디에 있는거지? 라는 생각을 하며 주변을 두리면 거리기 시작하면  ..쿵 그 소리를 듣습니다. '아아, 이 위다. 하지만 무엇을 하기에 이런 소리가 난것이지?' 그렇게 생각을 하며 神는 조용히 여우 가면을 만지작 거립니다. 그리고 M을 바라보며  '위로 올라가는겐가?' 라고 그에게 입모양으로 말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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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탁한 소음에 당신이 위를 올려다보며 입 모양으로 묻는 순간, M의 날카로운 시선이 당신에게로 향했다. 그는 당신의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검지를 자신의 입술에 가져다 대며 ‘정숙’을 의미하는 명확한 수신호를 보냈다. 조금 전 복도에서 보냈던 애매한 신호와는 달리, 이번에는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는 단호한 명령이었다. 그의 자색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도 차갑게 빛나며, 더 이상의 불필요한 행동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무언의 압력을 가했다.

그는 잠시 귀를 기울여 위층의 동태를 살폈다. 쥐 죽은 듯한 정적. 더 이상의 소음은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소리가 났다는 사실 자체가 이곳에 누군가 있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M은 잠시 망설이는 듯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가, 이내 결심한 듯 당신과 자신을 차례로 가리켰다. 그리고는 손바닥을 펴 당신을 향해 ‘대기’하라는 신호를 보낸 뒤, 다시 자신의 엄지손가락으로 위층을 가리켰다. 혼자 올라가서 확인하겠다는 의미였다. 당신의 능력이 어떻든, 아직은 신뢰할 수 없는 미지의 변수와 함께 섣불리 움직일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는 더 이상의 설명 없이 몸을 돌렸다. 그의 움직임은 고양이처럼 유연하고 소리가 없었다. 낡은 복도의 벽을 따라 그림자처럼 미끄러지듯 나아간 그는, 복도 끝에 자리한 2층 발코니로 향하는 낡은 계단을 찾아냈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 그는 한 걸음 한 걸음, 무게중심을 신중하게 옮기며 발을 디뎠다. 낡은 나무가 힘겹게 앓는 소리를 낼 때마다 그의 미간이 미세하게 좁혀졌다. 그의 모든 신경은 발소리를 죽이는 것과 위층에서 들려올지 모를 미세한 기척을 감지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었다.

마침내 2층에 도착한 그는, 계단참의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발코니석 쪽을 살폈다. 1층과 마찬가지로 먼지 쌓인 좌석들이 줄지어 있었지만, 공기의 흐름이 미묘하게 달랐다. 그리고… 희미하게, 아주 희미하게 달콤한 향기가 섞여 있었다. 썩은 먼지와 곰팡이 냄새 속에서 유독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마치 잘 익은 과일이나 값비싼 향수 같은 냄새였다. M의 코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하피의 능력 잔향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향기였다.

그는 허리를 더욱 숙여, 발코니석의 가장 뒤쪽 좌석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그의 시선은 향기가 흘러나오는 근원지를 집요하게 좇았다. 그리고 마침내, 가장 안쪽, 무대가 정면으로 내려다보이는 VIP석 근처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사람이었다. 누군가가 의자에 깊숙이 몸을 파묻은 채,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 긴 머리카락, 호화로운 코트의 실루엣.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 자세히 보니, 그것은 하피가 아니었다. 좀 더 체격이 크고, 분위기가 달랐다. 그리고 그가 앉은 의자 주변 바닥에는… 무언가 끈적한 액체가 흥건하게 고여 있었다. 달빛을 받아 검붉게 빛나는 그것은, 누가 봐도 혈흔이었다.

M은 숨을 죽였다. 함정인가? 아니면 또 다른 침입자? 그는 움직이지 않는 인영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상황을 파악하고, 아래층에 있는 당신에게 알려야 했다. 그가 막 계단 쪽으로 몸을 돌리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어라? 손님이 한 명 더 있었네."

등 뒤에서, 바로 귓가에 속삭이는 것처럼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름 끼치도록 유려하고 경박한 억양. M의 온몸의 솜털이 곤두섰다. 언제부터 뒤에 있었지?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의 심장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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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의 수신호. 그리고 어딘가 가만히 있으라는 듯한 눈빛. 가만히 있으라는건가? 하고 조용히 M을 바라보면, 그가 무언가 결심을 한듯 자신을 보고 동작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니까...  神는 이곳에서 대기하고 위로 올라가는 것은 M 혼자서 한다는 동작. '아까는 분명 내 대단한 능력을 봐준다 했으면서!' 갑자기 혼자 올라가서 상황을 살피겠다는 M에 불만이 있다는 듯 M의 등뒤를 노려보며 '딱 10초 셀동안 돌아오지 않으면 따라갈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M이 계단위로 돌라가면 神는 혼자 남겨집니다. 혼자 할 일도 없는데... 결국 눈에 띄는 것은 하비가 남긴 표식입니다. 神는 그것을 뚫아져라 보다가 가까이 다가가 흘러내리는 물감에 손을 댑니다. 물감은 그녀의 손에 묻지 않고 흙모래가 되어 떨어집니다. 그리고 천장을 봅니다.


"역시 늦는구나."

10초. 그녀의 머리속으로 10초라는 시간이 흐르고 마음속으로 다짐한 대로 표식에서 등을 돌려 계단으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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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계단으로 발을 옮기는 그 순간, 2층에서는 숨 막히는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등 뒤에서 울린 목소리에, M의 사고는 순간 정지했다.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감각. 훈련으로 다져진 반사신경이 비명을 질렀지만, 몸은 쇳덩이처럼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기척도, 소리도, 공기의 흐름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어떻게? 언제부터? 둥근 안경 너머로, 그의 자색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의 귓가에, 섬뜩할 정도로 다정한 숨결이 닿았다. 달콤한 향기가 뇌수를 마비시키는 듯했다. 목소리의 주인, 하피는 마치 오랜 연인을 대하듯 M의 어깨에 가볍게 턱을 괴었다. 196cm의 장신이 뿜어내는 위압감이 그림자처럼 M을 짓눌렀다.

"오랜만이야, 나의 영웅 나리. 이런 누추한 곳에서 몰래 숨바꼭질이라니, 자기 취향 한번 고약하네."

하피의 손가락이 천천히 M의 어깨선을 따라 흘러내렸다. 장갑을 끼지 않은 맨손에서 전해지는 차가운 체온이 셔츠를 뚫고 스며들었다. M은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섣부른 움직임은 즉각적인 죽음으로 이어질 터였다. 그는 오직 눈동자만을 굴려, 등 뒤에 선 남자의 모습을 어렴풋이 파악하려 애썼다.

"…무슨 속셈이지, 하피."

간신히 쥐어짜 낸 목소리는 갈라지고 잠겨 있었다. 평소의 나긋하고 여유로운 태도는 온데간데없었다. 하피는 그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낮게 웃었다. 웃음소리가 M의 등 뒤에서 진동했다.

"속셈? 글쎄다. 그냥… 오랜만에 자기가 보고 싶어서? 데스사이드 이후로 통 얼굴 보기가 힘들었잖아. 이 몸이 얼마나 서운했는지 알아? 우리 사이에 너무 벽을 치는 거 아니야, 달링?"

하피의 손이 M의 턱을 붙잡고 억지로 고개를 돌리게 했다. 저항할 수 없었다. 마주한 얼굴은 어둠 속에서도 기이할 정도로 선명했다. 길게 땋아 내린 푸른 머리카락, 장난기 넘치는 오드아이. 그는 천진한 아이처럼 웃고 있었지만, 그 눈동자 깊은 곳에는 어떤 감정도 담겨있지 않았다. M은 시선을 내려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때였다. 끼익… 아래층에서 낡은 계단이 삐걱거리는, 미세하지만 분명한 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이 올라오고 있었다. M의 심장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제발, 오지 마. 지금은 아니야. 그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하피 역시 그 소리를 들었다. 그의 웃음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M의 턱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의 고개가 천천히 계단 쪽으로 향했다.

"어라… 손님이 정말로 한 명 더 있었네. 자기, 말도 없이 파트너를 데려오면 어떡해. 이런 은밀한 재회는 단둘이서 즐겨야 제맛인데."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장난스러웠지만, 그 안에는 서늘한 살기가 번뜩이고 있었다. 그는 M의 턱을 놓아주고는, 마치 무대 위 배우처럼 우아하게 한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는 쓰러진 시체가 있는 VIP석 의자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저기 저 불쌍한 친구처럼 되고 싶지 않으면, 얌전히 있어줘야 해, 달링. 알았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피의 모습이 공기 속으로 녹아들 듯 사라졌다. 그의 기척은 흔적도 없이 지워졌다. 그가 있던 자리에 남은 것은 잔향처럼 맴도는 달콤한 향기뿐이었다.

M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는 황급히 계단 쪽을 돌아보았다. 당신의 실루엣이 계단참의 어둠을 헤치고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보였다.

"오지 말라고…!"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온 것은 날카로운 외침이었다. 평소의 그에게서는 상상할 수 없는, 다급하고 절박한 목소리. 그는 본능적으로 당신을 향해 손을 뻗었다. 막아야 했다. 이곳은 함정이다. 당신이 발을 들이는 순간, 모든 것이 끝장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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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의 외침이 神에게 닿습니다. 그 순간 움직이던 발을 멈추고 인기척을 살핍니다. 느껴지는 것으로는 M 혼자 밖에 없는 것 같지만, 그가 외치기 이전에는 분명 2명이 있는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렇다면, 은신? 그쪽에 재능이 있는 것일까? 神는 자신의 가면을 만져 자신의 눈가를 덮었다. M은 오지말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그렇다면 神가 할 일은 분명합니다. 그가 말했던 대로,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


"자, 그러면 조금 난동을 피워주마!"

神는 그렇게 소리를 치며, 자신이 잡고 있던 손잡이를 손으로 쓸어버립니다. 그 순간 계단의 손잡이는 점점 먼지로 변해갑니다. 그리고 그것은 손잡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M이 목소리가 들였던 천장의 부근까지 이어집니다. M이 저렇게 소리를 치는 것이면, 그의 근처에 적이 있다. 그렇다면 그 근처를 전부 없애버려 M과 적을 떨어트리면 되지 않은가! 神는 그대로 계단에서 뛰어내려 1층 바닥에 착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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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외침이 텅 빈 극장 안을 울렸다. 그 절박한 외침에, 당신이 계단을 오르던 걸음을 멈추는 것이 M의 시야에 들어왔다. M은 안도할 틈도 없이, 어둠 속 어딘가에 숨어 있을 하피의 기척을 찾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공기 중에 남은 달콤한 향기만이 그의 존재를 증명할 뿐, 그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젠장, 대체 어디에…

그의 초조한 시선이 당신에게 닿아있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당신의 손이 낡은 나무 계단의 난간을 스치는 것을 그는 보았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당신의 손길이 닿은 곳부터, 단단했던 나무가 마치 오랜 세월을 한 번에 맞은 것처럼 버석하게 말라비틀어지기 시작했다. 파괴는 순식간에 번져나갔다. 나무는 빛을 잃고, 형태를 잃고, 마침내 고운 흙모래가 되어 힘없이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끼익, 삐걱거리던 소음은 이제 콰르르 무너져 내리는 굉음으로 바뀌었다. 먼지 기둥이 뿌옇게 피어오르며 M이 있는 2층 발코니를 향해 맹렬한 기세로 다가왔다.

M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이것이 당신의 능력인가. 단순한 물리력이나 원소 조종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의 근간을 뒤흔드는 듯한 권능. 그의 등줄기를 타고 흐른 것은 공포와는 다른, 설명할 수 없는 경외감이었다. 그는 무너져 내리는 계단과, 그 아래로 가볍게 뛰어내려 1층 바닥에 착지하는 당신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붉고 흰 옷자락이 먼지 안개 속에서 나부꼈다.

그때, M의 등 뒤, 어둠이 가장 짙게 깔린 객석 구석에서 나지막한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이내 박수를 치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브라보! 브라보! 이야, 이거 정말 대단한 쇼인데? 자기, 이런 화끈한 아가씨를 파트너로 두다니, 제법인데?"

목소리의 주인은 하피였다. 그는 어느새 객석의 가장 높은 곳, 마치 왕좌처럼 보이는 좌석의 팔걸이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는 즐거워 죽겠다는 듯 다리를 까딱거리며, 무너진 계단과 당신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의 오드아이가 흥분으로 반짝였다.

"이런 건 예상 못 했네. 유니온의 개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박력 넘치게 굴었지? 아, 정말이지… 마음에 들어. 둘 다."

하피는 자리에서 가볍게 뛰어내렸다. 고양이처럼 소리 없이 착지한 그는, 바닥에 흥건한 피웅덩이와 그 안에 쓰러진 시체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당신을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그의 걸음걸이는 우아하고 여유로웠으며, 매 걸음마다 짙은 향기가 공기 중에 퍼져나갔다. 그의 시선은 오롯이 당신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M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하피의 관심이 당신에게로 향했다. 그가 당신에게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었다. 이대로 두면 안 된다. M은 본능적으로 움직이려 했지만, 하피가 남긴 경고가 뇌리를 스쳤다. ‘얌전히 있어줘야 해.’

M은 주먹을 꽉 쥐었다. 손등에 푸른 힘줄이 도드라졌다. 이성과 본능 사이에서 갈등하는 동안, 하피는 이미 당신의 바로 앞까지 다가가 있었다. 그는 연극배우처럼 과장된 몸짓으로 허리를 숙여 당신에게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레이디. 이런 소란스러운 첫 만남을 용서해주길. 난 하피. 만나서 반가워, 달링."

그가 당신의 손을 잡으려는 듯, 장갑을 낀 손을 내밀었다. 그 순간, M은 결심을 굳혔다. 그는 안경을 고쳐 쓰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먼지 이는 소음에 섞여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았다.

"…어쩔 수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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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은 1층에 내려와 자신의 옷깃으로 코와 입을 막아 자신이 만들어낸 먼지를 막습니다. '이것으로 된것같은데, M은 아직 위에 있는것인가? 이럴때일수록 합류를 하면 좋으려만.' 그렇게 생각하며 위를 바라보면 神가 생각했던 사람과는 다른, 화려한 남성의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바닥위 피웅덩이.

神는 갑자기 나타난 남자가 흥미롭다는 듯 바라봅니다. '꽤나 독특한 사람.' 여태 神가 살아오면서 한번도 본적없는 분류입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신사적인 그의 말에 웃으며 말합니다.


"하하, 자네 나에게 레이디라고 한건가! 음음. 나쁘지 않군. 아아, 자네가 하피라고 하는가. 이몸은 神. 음...달링? 그건 무슨 인사인가?"

아쉽게도 그가 하는 몇가지 단어는 神가 어려운 말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외국어 공부를 조금 해두는 편이 좋았을 지도 모르겠군.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조용히 하피가 내미는 손을 봅니다.


"미안하지만 처음 보는 이의 손을 함부로 잡으면 안된다고 이야기를 들어서 말일세."

알아듣기 쉬운 거절의 말을 하며 가면 너머로 하피를 주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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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피는 당신이 내민 손을 거절하자, 잠시 공중에 멈춘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마치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농담이라도 들은 사람처럼 어깨를 들썩이며 웃음을 터뜨렸다. 과장되고 연극적인 웃음소리가 먼지가 채 가라앉지 않은 극장 안에 울려 퍼졌다. 그의 오드아이는 흥미롭다는 듯 가늘게 휘어졌다.

"하하, 아하하! 거절당했네, 이 몸! 이야, 이거 신선한데? 보통은 내 얼굴을 보면 다들 못 이기는 척 손을 잡던데 말이야. 달링, 당신 정말 특별한 사람이구나."

그는 아무렇지 않게 손을 거두어, 자신의 가슴팍에 가져다 대며 연극배우처럼 탄식하는 시늉을 했다. 그 와중에도 그의 시선은 당신의 가면, 그 너머에서 이질적인 빛을 발하는 흑과 백의 눈동자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 시선에는 경계심보다는 순수한 호기심과 유희의 빛이 가득했다.

" ‘신’이라… 이름 한번 거창하네. 하지만 좋아, 마음에 들어. 이 지루한 세상에 당신 같은 존재가 하나쯤은 더 있어도 괜찮겠지. 그리고 ‘달링’은 말이야, 그냥 애칭 같은 거야. 특별히 마음에 든 상대에게만 붙여주는, 아주 귀하고 소중한 호칭이지. 영광인 줄 알아, 나의 새로운 달링."

그가 능청스럽게 윙크하며 당신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의 몸에서 풍기는 달콤하면서도 어딘가 인공적인 향기가 훅 끼쳐왔다. 그는 당신의 바로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는, 허리를 숙여 당신의 얼굴을, 가면을 쓴 그 얼굴을 더욱 가까이에서 들여다보았다. 마치 진귀한 보석을 감정하는 감정사처럼.

그 순간이었다. 2층에서부터 무언가 찢어지는 듯한, 기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단순한 파열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의 뼈와 살이 뒤틀리고 변이하는 듯한, 불쾌하고 섬뜩한 소리였다. 으드득, 뚜둑- 하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오며, 2층 발코니를 지탱하던 나무 기둥 몇 개가 안쪽으로 꺾이며 부러져 내렸다. 육중한 발코니의 일부가 위태롭게 기울어지며 엄청난 굉음과 함께 바닥으로 추락했다. 당신과 하피가 서 있던 곳에서 불과 몇 걸음 떨어진 곳이었다. 자욱한 먼지가 폭풍처럼 일어났다.

하피는 놀란 기색도 없이, 그저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들어 붕괴가 시작된 2층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입가에 걸린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이런, 이런. 저 위의 친구가 단단히 화가 났나 보네. 자기가 아끼는 새로운 장난감을 내가 먼저 채가려고 해서 그런가? 질투는 보기 흉한데 말이지, M."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먼지 안개 속에서 하나의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M이었다. 하지만 당신이 알던 그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의 몸은 기이할 정도로 부풀어 있었고, 검은 셔츠는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찢어져 있었다. 그의 등에서는 박쥐의 것과 흡사한, 기괴하고 거대한 가죽 날개가 돋아나 있었다. 피부는 시체처럼 창백해졌고, 손톱은 짐승처럼 날카롭게 자라 있었다. 암록색 머리카락 아래로 드러난 자색 눈동자는, 이제 안광 없이 텅 빈 것이 아니라 붉은 살의로 번뜩이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인간 M이 아니었다. 게이트 속에서나 볼 법한, 흉측한 S급 몬스터 ‘가고일’의 모습이었다.

그는 무너진 발코니의 잔해 위에 서서, 금방이라도 사냥감을 찢어발길 듯한 맹수처럼 당신과 하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입에서 인간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낮고 위협적인 그르렁거림이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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