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화 버튼 꾹꾹
렌이 동물
레인웨이 로드의 동물병원 앞에서 비광은 한 손에 작은 캐리어를, 다른 한 손에는 쇼핑백을 들고 멈춰 섰다. 캐리어 안에서 꼬물거리는 작은 존재가 철망에 분홍빛 코를 들이밀며 킁킁거렸다.
48시간 전, 레인웨이 외곽에서 발생한 소규모 게이트의 잔여 에너지가 그녀를 덮쳤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하얀 실크 기모노가 푹신한 털 아래로 사라지고, 연분홍빛 귀와 작은 발이 드러났을 때, 비광은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겨우 삼켜야 했다. 작고, 하얗고, 분홍빛이 살짝 도는. 토끼 한 마리가 하얀 안대를 질질 끌며 기모노 더미 위에 앉아 있었으니.
유니온 의료팀의 진단은 명확했다. 일시적 형태 변이. 48시간 내로 원래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하지만 그 48시간 동안 그녀를 돌볼 사람은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페어였으니.
비광은 사무실 책상 위에 쇼핑백 내용물을 펼쳐놓았다. 둥글고 납작한 플라스틱 버튼들이 알록달록하게 줄지어 나왔다. 각각의 버튼 위에는 마커로 또박또박 글씨가 쓰여 있었다.
テリ군이 추천해줬는데 말이지. 요새 동물들 소통용으로 유행한다더군.
그는 캐리어 문을 열어 작은 토끼를 조심스레 꺼내,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하얀 안대가 한쪽 귀 위로 삐뚤어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비광은 나직이 웃으며 안대를 살짝 고쳐 매어주었다. 토끼의 분홍빛 눈동자가 그의 손가락을 따라 흔들렸다.
자, 이보게 렌.
비광은 무릎을 꿇고 책상 높이에 눈을 맞추었다. 금빛 눈동자가 토끼의 작은 눈과 수평을 이루었다.
이 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버튼을 눌러보시게.
그가 가지런히 늘어놓은 버튼들은 이러했다.
밥 · 간식 · 물 · 사랑해 · 싫어 · 놀자 · 졸려 · 오라비 · 화대내놔 · 밖에 가자
토끼는 버튼을 작은 코로 킁킁 냄새 맡더니, 앞발을 들어 ─
뿅 ♡
「 오 라 비 」
기계음이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비광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금빛 눈동자가 반달처럼 휘어졌다. 그는 입술을 깨물며 웃음을 참았지만, 참지 못하고 끝내 낮게 터뜨리고 말았다.
하, 이 녀석. 토끼가 되고도 이 몸의 심장부터 노리는구먼.
토끼가 작은 앞발로 또다시 버튼을 꾹 눌렀다.
간 식
⌒(ё)⌒
간 식
⌒(ё)⌒
간 식
세 번. 연속으로 세 번을 꾹꾹 누르는 앞발이 다급했다. 작은 토끼가 앞발을 동동 구르며 간식 버튼 위에 아예 올라앉으려 하자, 비광은 참다 못해 손바닥으로 토끼를 감싸 쥐었다. 부드러운 솜뭉치가 손 안에서 꿈틀거렸다.
알았다, 알았어. 간식 가져올 테니 잠깐만 기다리게.
그가 서랍에서 말린 과일 조각을 꺼내 토끼의 코앞에 내밀자, 작은 입이 오물오물 움직였다. 비광은 그 모습을 한참 내려다보다가, 나지막이 한숨 섞인 웃음을 흘렸다.
토끼가 간식을 다 먹자, 다시 뒤뚱뒤뚱 버튼 쪽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천천히, 마치 고민하는 것처럼 코를 이리저리 대더니.
화대내놔
← 코를 대다가
⤹ 방향전환 ⤸
졸 려
작은 솜뭉치가 보라색 버튼 위에 앞발을 올려놓은 채, 그대로 옆으로 스르르 기울었다. 마치 화대 버튼을 누르려다 양심에 걸린 것처럼, 아니, 토끼에게 양심이라는 것이 있을 리 없지만, 하여튼 그 고개를 돌리는 타이밍이 절묘하게도 '렌'다웠다.
비광은 한쪽 팔꿈치를 책상에 기대고, 턱을 괸 채 그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금빛 눈동자 위로 드리운 은발 가닥이 흔들렸다.
졸리다고? 방금 간식 세 번이나 뜯어먹고서?
토끼의 귀가 핀 채로 미세하게 떨렸다. 마치 '그래서 뭐 어쩔 건데'라고 말하는 것 같은, 기묘하게 당당한 떨림이었다. 비광은 코웃음을 흘리며 손바닥을 펼쳐 토끼 앞에 내밀었다. 올라타라는 듯. 토끼는 분홍빛 코를 킁킁거리더니, 잠시 망설이는가 싶었으나 결국 폴짝 뛰어 그의 손바닥 위로 올라섰다.
가벼웠다. 한 손에 담기는 무게. 부드러운 털 아래로 느껴지는 작은 심장의 고동. 비광은 토끼를 가슴 높이로 들어 올려, 하오리 안쪽으로 조심스레 품었다. 작은 몸이 체온을 찾아 꿈틀 파고들었다.
ほんま、しゃあないなぁ。
정말이지, 어쩔 수 없구먼.
사무실 소파에 등을 기대자, 품 안의 토끼가 옷 사이로 코를 들이밀며 자리를 잡았다. 비광은 검지 하나로 그 작은 이마와 귀 사이를 천천히 쓸어주었다. 토끼의 귀가 내려앉고, 눈이 반쯤 감겼다.
잠시 조용해진 사무실. 창밖으로 스타레인의 야경이 흘러들어왔다. 비광은 토끼의 등을 느릿하게 쓸어 내리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토끼가 돼가지고도 하고 싶은 말은 또렷하구먼. 오라비, 간식, 졸려. 이 세 마디면 자네 인생관이 다 담겨 있는 것 아닌가.
대답 대신 토끼의 뒷발이 허공에서 한 번 까딱거렸다. 비광은 그 발바닥의 분홍빛 패드를 엄지로 살짝 건드렸다. 솜뭉치가 움찔하며 발을 거둬들이고, 하오리 안쪽으로 더 깊이 파고들었다.
비광은 고개를 젖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입가에 걸린 미소는 지워지질 않았다. 이 작은 솜덩이가 48시간 뒤면 다시 그 경박하고 능청맞은 웃음을 달고 나타날 것이다. '화대 내놔'라는 버튼 위에서 방향을 튼 그 잠깐의 머뭇거림을 안주 삼아 얼마든 놀려먹을 수 있을 텐데.
…… 마, 빨리 돌아오게.
토끼의 숨이 고르게 잦아들었다. 잠든 것이다. 비광은 품 안의 작은 온기를 한 손으로 감싸 안은 채, 소파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책상 위에 남겨진 알록달록한 버튼들 사이에서, 유독
비광이 동물
레인웨이 로드 외곽, 시바하마 극장.
그곳에서의 일곱 번째 판이 끝나고, 여덟 번째 판이 끝나고, 아홉 번째의 판.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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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갑작스러웠다.
유니온 본부 7층, 울프독 사무실에 긴급 경보가 울린 것은 평범한 오후였다. 레인웨이 외곽에서 감지된 소규모 게이트 잔존파. 등급은 미미했고, 위협도는 최저. 다만 그 파동이 스쳐 지나간 경로 위에 하필이면, 비광이 서 있었다.
테리가 비명을 질렀다.
아이작이 안경을 벗었다.
그리고 붉은 하오리가 텅 빈 채 바닥에 내려앉았을 때, 그 옷감 사이로 기어 나온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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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여우 한 마리.
손바닥 두 개를 겨우 채울 만한 크기의, 긴 은색 꼬리를 가진 새끼 여우. 둥근 선글라스는 사라졌고, 대신 금빛 눈동자 두 개가 또렷하게 세상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여우는 자신의 앞발을 내려다보더니, 꼬리를 한 바퀴 감았다. 그리고 입을 벌렸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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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삼 일째.
蓮은 유니온 본부 2층 복지시설 내 편의점 앞에 서 있었다. 넓은 실크 소매 아래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원형의, 앙증맞은 버저 세트. 겉면에는 '반려동물 의사소통 키트 ─ 말하는 버튼 30개 세트'라고 쓰여 있었다. 蓮은 그것을 품에 안고 울프독 사무실의 문을 밀었다.
책상 위, 쿠션 하나를 차지하고 웅크린 은빛 여우가 고개를 돌렸다. 금색 눈동자가 蓮을 포착했다. 꼬리가 한 번,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가 멈춘다. 체면을 지키려는 듯.
오라비.
蓮이 불렀다. 여우의 귀가 쫑긋 세워졌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이걸 눌러보세요.
蓮은 책상 위에 버튼을 하나씩 늘어놓았다. 각각의 원형 버저에는 녹음된 단어가 적혀 있었다.
밥 · 싫어 · 놀자 · 사랑해 · 간식 · 화남 · 졸려 · 쓰다듬어 · 내기
여우가 쿠션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앞발로 터벅터벅, 버튼 앞까지 걸어왔다. 금빛 눈동자가 하나하나를 훑었다. 작은 코가 밥 버튼을 킁킁 맡더니 지나치고, 싫어 위에서 잠시 멈칫했다가, 결국 앞발을 들어 올려.
탁.
내̤기̊
기계음이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은빛 꼬리가 좌우로 한 번 크게 흔들렸다. 여우의 눈이 반달 모양으로 휘었다. 그 표정은 영락없이, 패를 손에 쥐고 "마, 한 판 할까?"라고 능글맞게 웃던 그 사람이었다.
蓮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아, 역시. 이 존재는 어떤 형태가 되든 본질이 바뀌지 않는다.
뭘 걸 건데요, 오라비? 지금 그 몸으로?
여우가 다시 앞발을 들어 올렸다. 이번에는 주저 없이.
탁.
놀̊자͎
그리고 바로.
탁.
쓰̤다̊듬̈어̥
연타. 놀자, 쓰다듬어. 놀자, 쓰다듬어. 작은 앞발이 두 버튼 사이를 바쁘게 오갔다. 기계음이 겹쳐졌다.
놀자쓰다듬어놀자쓰다듬어놀자쓰 다 듬 어
마지막에, 여우가 멈춰 섰다. 숨을 한 번 들이쉰 것처럼 작은 옆구리가 부풀었다 꺼졌다. 그리고, 금빛 눈동자가 蓮을 똑바로 올려다보며.
조심스럽게.
아주 조심스럽게, 앞발 하나를.
탁.
사···랑···해
소리가 너무 작았다. 기계음의 볼륨이 최소로 맞춰진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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