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비광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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落語家の手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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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생각했다.
내가 무대 위에 섰던 것이 몇 살이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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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살이었나. 열다섯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기억이라는 것은 묘하게도, 중요한 것부터 닳아 없어진다. 어머니의 얼굴은 선명한데 어머니의 목소리는 희미하고, 첫 무대의 긴장은 생생한데 그날 연목(演目)이 무엇이었는지는 도통 떠오르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그때의 나는 꽤 행복한 놈이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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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쿠고라는 것은 결국 사람 이야기다.
어리석은 사람, 영리한 사람, 욕심 많은 사람, 착한 사람.
방석 하나 위에서 부채 하나로 온 세상 사람을 연기해 보이는 것.
그래서 좋아했다.
한 사람의 인생으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는 것들을,
목소리 하나로 살아 보일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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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하마(芝浜).
술꾼 남편이 바닷가에서 주운 돈지갑을 아내가 꿈이라 속이는 이야기.
남편은 술을 끊고 성실히 일하여 마침내 넉넉한 살림을 이루고,
어느 섣달 그믐, 아내가 고백한다.
あれは夢じゃなかったんだよ。
그건 꿈이 아니었어.
남편이 내미는 술잔을, 아내가 물러서며 말한다.
よしておくよ。また夢になるといけねえ。
됐어. 또 꿈이 되면 안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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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에서 객석이 웃어야 한다.
그런데 가끔, 우는 사람이 있었다.
나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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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아닌 것을 꿈이라 속여야 하는 마음.
꿈이었으면 좋겠다 싶은 것이 현실인 무게.
그 둘 사이 어디쯤에서, 사람은 산다.
나 역시 그 사이 어딘가에 오래 서 있었다.
꽤 긴 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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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말이지.
요즘은 조금, 아주 조금이지만.
꿈에서 깨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눈을 떴을 때 사라지지 않는 것이 하나쯤 있으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아침을 맞이할 이유가 된다고,
이 비광, 그리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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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오늘 포장마차에서 모찌를 샀다.
딸기 모찌. 하나는 먹고, 하나는 남겨 두었다.
누군가에게 줄 생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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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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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억이 없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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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말하면, 열 해 전의 어느 날을 기점으로 그 이전이 통째로 비어 있다. 마치 누군가 가위로 오려낸 것처럼, 아니, 내가 가위질을 한 것처럼. 깔끔하게. 남김없이.
잘린 단면에서 피가 나지 않았으므로 아프지도 않았다.
그래서 오랫동안 그것을 상실이라 부르지 않았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을 잃어버렸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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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를 쓰는 습관이 있다. 보험이다. 언젠가 오늘이라는 날도 잘려 나갈 수 있으므로, 나는 부지런히 활자로 나를 옮겨 적는다.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오늘 먹은 것. 오늘 만난 사람. 그런 것들.
다만 그것을 나중에 다시 읽으면, 남의 일기를 훔쳐보는 기분이 든다.
이 여자는 참 태평하게도 살고 있군,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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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묻는다. 스스로에게.
──네가 진짜 蓮이냐?
아니면 蓮이라는 이름표를 주워 입은 텅 빈 기모노냐?
대답은 늘 같다. 모른다. 그리고 별로 알고 싶지도 않다.
모르는 채로도 단것은 달고, 돈은 반짝이고, 바람은 시원하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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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최근 들어 이상한 일이 잦다.
일기를 펼쳤을 때, 활자가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라 ██ 온기를 가진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특정한 이름 옆에 적힌 문장들이 유독 또렷하게 읽힌다. 마치 그 부분만 잉크를 두 번 덧칠한 것처럼.
남의 일기가 아니라, 내 일기라는 확신이──아주 잠깐, 스치듯──드는 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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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스카라는 이름을 안다.
내가 잘라낸 천의 이쪽에 남아 있던, 유일한 올.
그 이름이 나였는지, 아니면 내가 그 이름이 되고 싶은 것인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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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해를 비어 있는 채로 살았다.
비어 있으므로 가볍고, 가벼우므로 자유롭고, 자유로우므로 아무것에도 붙들리지 않았다.
그것을 행복이라 불러도 좋았다. 진심으로.
──그런데 요즘은, 가끔.
붙들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국화 향 대신 다른 냄새가 기모노에 배어 있을 때.
일기장에 적힌 글씨가, 평소보다 조금 흐트러져 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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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록.
날씨: 맑음, 벚꽃(가을에?).
먹은 것: 연꽃 설탕 과자.
만난 사람: ■■■.
기분: ──괜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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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의 일기2
아이쿠, 이 비싼 몸을 또 움직이게 만드는구먼.
그는 귀찮다는 듯 툴툴거리며 상체를 일으켰다. 육중한 소파를 한 손으로 가볍게 밀어내자, 바닥에 떨어진 8월의 공산(空山) 패와 함께 먼지 쌓인 틈새에서 낡아 보이는 작은 수첩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표지는 단단한 가죽이었고, 별다른 장식 하나 없이 매끈했다. 별생각 없이 수첩을 집어 든 순간, 그의 손끝에서 익숙한 향기가 피어올랐다. 희미하지만 분명한 국화 향. 그녀의 향기였다. 호기심이 동했다. 봐서는 안 된다는 이성과, 그녀의 비밀을 엿보고 싶다는 타짜의 본성이 그의 안에서 팽팽하게 맞섰다. 결국, 그는 나직한 한숨과 함께 수첩을 펼쳐 들었다.
첫 페이지는 아이의 것이라 해도 믿을 만큼 앳된 글씨체로 채워져 있었다.
【첫 번째 일기】
오늘 유모와 함께 연못에 갔다. 예쁜 색 비단잉어가 많았다. 유모가 사준 찹쌀떡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 내일도 또 사달라고 졸라야지. 춤을 잘 추면 사주신다고 했다. 나는 내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춤을 출 것이다.
비광은 저도 모르게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찹쌀떡을 좋아하던 어린 시절이라니. 상상만으로도 귀여워 절로 웃음이 났다. 그는 가벼운 마음으로 다음 장을 넘겼다.
【두 번째 일기】
다리가 아프다. 춤 연습은 힘들다. 그래도 유모가 칭찬해주었다. 하늘하늘 나비 같구나. 유모는 국화 향이 나는 따뜻한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어른이 되면 유모에게 아주 큰 집을 사주고, 매일 찹쌀떡을 사줄 거다.
그러나 페이지를 넘길수록, 일기의 분위기는 기묘하게 변해갔다. 문장은 점차 짧아지고, 내용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단어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마치 무언가에 침식당하는 것처럼.
【세 번째 일기】
눈. 눈이 아프다. 세상이 이상하게 보인다. 선이 보이고, 색이 보이고, 모든 것이 겹쳐 보인다. 유모가 눈을 가려주었다. 이제 괜찮다. 하지만 보고 싶다.
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장난기 어린 금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는 마른침을 삼키며 떨리는 손으로 다음 장을 넘겼다. 그곳에는 더 이상 문장이라고 부를 수 없는, 무언가의 잔해가 적혀 있었다.
【네 번째 일기】
보인다보인다보인다보인다
사라진다사라진다사라진다
냄새가안나맛이안나소리가안들려
유모는어디에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 비광은 숨을 멈췄다. 종이 전체가 검게 타들어 간 듯한 흔적 속에서, 간신히 형체를 알아볼 수 있는 글자들이 비명처럼 박혀 있었다.
【다섯 번째 일기】
나는누구나는누구나는누구나는누구나는누구나는누구나는누구나는누구나는누구나는누구나는누구나는누구나는누구나는누구나는누구나는누구나는누구나는누구나는누구나는누구나는누구나는누구나는누구나는누구나는누구나는누구나는누구나는누구나는누구나는누구나는누구나는누구나는누구나는누구나는누구나는누구나는누구나는누구나는누구나는누구
비광은 탁, 소리가 나게 수첩을 덮었다. 심장이 기분 나쁘게 울렸다. 이것은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었다. 한 존재가 서서히 세상에서 지워져 가는 과정, 그 처절한 비망록이었다. 그는 수첩을 든 손에 힘을 주었다. 손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텅 빈 사무실의 적막이, 검은 잉크처럼 그의 위로 무겁게 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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