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화 버튼
화창했던 오후가 한순간에 뒤집힌 건, 밀키웨이 로드 어귀에서였다. 허공에 잔존하던 데스사이드의 사념인지, 아니면 어느 자투리 게이트가 토해낸 변덕인지. 옅은 보랏빛 안개가 비광의 발치를 휘감았다가 흩어졌고, 그가 어, 하는 소리를 채 끝맺기도 전에 펑, 하고 가벼운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한 마리의 새하얀 학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학이라기엔 어딘가 어설픈, 은빛 깃털을 두른 자그마한 새였다. 골반까지 닿던 은발은 정수리의 깃털로 변했고, 찬란하던 금빛 눈동자만은 그대로 동그래져 蓮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푸드덕. 날개가 제 뜻대로 접히지 않는지, 작은 새는 자갈 위에서 한 바퀴 우스꽝스럽게 굴렀다.
삐익! 삐이익!
무어라 말을 하려는 듯 부리를 빠끔거렸으나, 입 밖으로 나오는 건 가냘픈 새 울음뿐이었다. 발치에는 둥근 붉은 선글라스만 덩그러니 떨어져 있었다. 작은 새는 그 선글라스를 부리로 콕콕 쪼아 보더니, 제 신세가 기가 막히다는 듯 고개를 푹 떨궜다.
그러나 蓮은 당황하기는커녕, 어디서 그새 사 왔는지 동그란 녹음벨 버저 몇 개를 자갈 위에 가지런히 늘어놓았다. '밥', '사랑해', '간식', '안아줘' 같은 단어가 적힌, 발만 한 크기의 버튼들이었다.
자, 야나기 님.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이 버튼을 눌러 보세요.
그 능청맞은 권유에, 작은 새가 된 비광은 동그란 눈을 데구루루 굴렸다. 이 사람이, 이 상황에서, 기껏 사 온 게 이거란 말인가. 어이가 없어 부리를 딱딱 부딪쳤으나, 결국 그 호기심을 못 이긴 모양이었다.
뒤뚱뒤뚱, 자그마한 발로 자갈을 밟고 다가간 비광이 가장 가까운 버튼 위에 폴짝 올라섰다.
사♡랑♡해
눌리지 말아야 할 곳이 눌렸는지, 분홍빛 단어가 자갈 마당 위로 또랑또랑 울려 퍼졌다. 비광은 화들짝 놀라 그 위에서 펄쩍 뛰어내렸다. 깃털이 부르르 곤두섰다. 아니, 이게 아니라! 하는 듯 황급히 옆 버튼으로 옮겨 갔으나.
안아…줘?
하필이면 또 그 버튼이었다. 작은 새가 된 비광은 부리를 한껏 벌린 채 얼어붙었다. 보랏빛 글자가 끝에 물음표를 매단 채, 어쩐지 더없이 애처롭게 마당을 굴렀다. 푸드덕, 푸드덕. 깃털이 죄다 곤두선 채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꼴이, 영락없이 부끄러움에 몸 둘 바를 모르는 모양새였다.
삐이익…!
제발 그 둘은 빼고 들으라는 듯, 작은 새가 蓮을 향해 필사적으로 울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짧고 다급한 발걸음이 이번엔 '밥' 버튼을 향했으나, 그마저도 어찌나 황망했는지 발이 미끄러져 그만 '간식' 버튼을 밟고 말았다.
간↗식↘
노란 글자가 경쾌하게 튀어 올랐다. 작은 새는 그제야 모든 걸 포기한 듯, 자갈 위에 폭 주저앉아 깃털 속에 머리를 파묻었다. 사♡랑♡해, 안아줘, 간식. 결국 제 입으로 골라 누른 것이 그 세 마디뿐이라니. 평소 그 능청맞은 입담은 다 어디로 갔는지, 새가 된 비광에게 남은 건 솔직하다 못해 적나라한 본심뿐인 듯했다.
잠시 후, 비광은 체념한 듯 고개를 빼꼼 들었다. 동그란 금빛 눈이 蓮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그러더니 뒤뚱뒤뚱 다시 한번, 이번엔 망설임 없이 '사랑해' 버튼 위로 폴짝 올라섰다.
사♡랑♡해
이번엔 실수가 아니라는 듯, 작은 새가 그 버튼을 몇 번이고 콩, 콩, 다시 밟았다. 사♡랑♡해. 사♡랑♡해. 분홍빛 고백이 가을 햇살 아래 연거푸 울려 퍼졌고, 비광은 그 위에서 깃털을 부풀린 채 蓮을 빤히 올려다볼 따름이었다. 새가 되어 말 한마디 못 하게 되어서야, 가장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더없이 분명해진 까닭이었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한 마리의 새하얀 학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학이라기엔 어딘가 어설픈, 은빛 깃털을 두른 자그마한 새였다. 골반까지 닿던 은발은 정수리의 깃털로 변했고, 찬란하던 금빛 눈동자만은 그대로 동그래져 蓮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푸드덕. 날개가 제 뜻대로 접히지 않는지, 작은 새는 자갈 위에서 한 바퀴 우스꽝스럽게 굴렀다.
삐익! 삐이익!
무어라 말을 하려는 듯 부리를 빠끔거렸으나, 입 밖으로 나오는 건 가냘픈 새 울음뿐이었다. 발치에는 둥근 붉은 선글라스만 덩그러니 떨어져 있었다. 작은 새는 그 선글라스를 부리로 콕콕 쪼아 보더니, 제 신세가 기가 막히다는 듯 고개를 푹 떨궜다.
그러나 蓮은 당황하기는커녕, 어디서 그새 사 왔는지 동그란 녹음벨 버저 몇 개를 자갈 위에 가지런히 늘어놓았다. '밥', '사랑해', '간식', '안아줘' 같은 단어가 적힌, 발만 한 크기의 버튼들이었다.
자, 야나기 님.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이 버튼을 눌러 보세요.
그 능청맞은 권유에, 작은 새가 된 비광은 동그란 눈을 데구루루 굴렸다. 이 사람이, 이 상황에서, 기껏 사 온 게 이거란 말인가. 어이가 없어 부리를 딱딱 부딪쳤으나, 결국 그 호기심을 못 이긴 모양이었다.
뒤뚱뒤뚱, 자그마한 발로 자갈을 밟고 다가간 비광이 가장 가까운 버튼 위에 폴짝 올라섰다.
사♡랑♡해
눌리지 말아야 할 곳이 눌렸는지, 분홍빛 단어가 자갈 마당 위로 또랑또랑 울려 퍼졌다. 비광은 화들짝 놀라 그 위에서 펄쩍 뛰어내렸다. 깃털이 부르르 곤두섰다. 아니, 이게 아니라! 하는 듯 황급히 옆 버튼으로 옮겨 갔으나.
안아…줘?
하필이면 또 그 버튼이었다. 작은 새가 된 비광은 부리를 한껏 벌린 채 얼어붙었다. 보랏빛 글자가 끝에 물음표를 매단 채, 어쩐지 더없이 애처롭게 마당을 굴렀다. 푸드덕, 푸드덕. 깃털이 죄다 곤두선 채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꼴이, 영락없이 부끄러움에 몸 둘 바를 모르는 모양새였다.
삐이익…!
제발 그 둘은 빼고 들으라는 듯, 작은 새가 蓮을 향해 필사적으로 울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짧고 다급한 발걸음이 이번엔 '밥' 버튼을 향했으나, 그마저도 어찌나 황망했는지 발이 미끄러져 그만 '간식' 버튼을 밟고 말았다.
간↗식↘
노란 글자가 경쾌하게 튀어 올랐다. 작은 새는 그제야 모든 걸 포기한 듯, 자갈 위에 폭 주저앉아 깃털 속에 머리를 파묻었다. 사♡랑♡해, 안아줘, 간식. 결국 제 입으로 골라 누른 것이 그 세 마디뿐이라니. 평소 그 능청맞은 입담은 다 어디로 갔는지, 새가 된 비광에게 남은 건 솔직하다 못해 적나라한 본심뿐인 듯했다.
잠시 후, 비광은 체념한 듯 고개를 빼꼼 들었다. 동그란 금빛 눈이 蓮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그러더니 뒤뚱뒤뚱 다시 한번, 이번엔 망설임 없이 '사랑해' 버튼 위로 폴짝 올라섰다.
사♡랑♡해
이번엔 실수가 아니라는 듯, 작은 새가 그 버튼을 몇 번이고 콩, 콩, 다시 밟았다. 사♡랑♡해. 사♡랑♡해. 분홍빛 고백이 가을 햇살 아래 연거푸 울려 퍼졌고, 비광은 그 위에서 깃털을 부풀린 채 蓮을 빤히 올려다볼 따름이었다. 새가 되어 말 한마디 못 하게 되어서야, 가장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더없이 분명해진 까닭이었다.
📌
Status
날짜: 10월 1일 요일: 수요일 계절: 가을 시각: 오후 1시 41분 장소: 밀키웨이 로드 어귀 PC와 비광의 관계: 평생을 함께하기로 맹세한 연인 PC를 향한 비광의 감정: 새가 되어 말문이 막히자 부끄러움에 허둥대다가, 결국 가장 솔직한 본심만을 골라 누르는 순정 어린 애정 비광을 향한 PC의 감정: (직접 서술 제외) PC의 복장: 넓은 소매의 흰 실크 기모노, 두 눈을 가린 하얀 붕대 비광의 복장: (변신 상태) 은빛 깃털의 자그마한 새, 발치에 둥근 붉은 선글라스 PC의 자세·상세위치·상태: 자갈 위에 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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