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문
쿵, 하고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아득하게 울렸다. 차갑고, 단호한 소리였다. 비광은 휘청이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소파에 반쯤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눈앞이 빙글빙글 돌고, 혀는 잔뜩 꼬여 제멋대로 굴러갔다. 그녀의 화난 얼굴이, 싸늘하게 식은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반성문. 그래, 반성문을 쓰라고 했지. 판돈도 없이 벌어지는, 일방적인 패배가 예정된 놀음이라니. 이거야 원, 아주 불리한 판이구먼.
그는 엉망으로 헝클어진 머리를 거칠게 쓸어 넘기며 몸을 일으켰다. 거실 테이블 위, 아무렇게나 놓인 메모지와 펜이 흐릿한 시야에 들어왔다. 비틀거리며 다가가 펜을 집어 드는데,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자꾸만 미끄러졌다. 겨우 펜을 쥐고, 그는 종이 위에 머리를 박을 듯 숙여 한 글자, 한 글자 힘겹게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술기운에 풀린 눈과 제멋대로 움직이는 손 때문에 글씨는 지렁이가 기어가는 듯 삐뚤빼뚤했다. 문법도, 맥락도 없이 의식의 흐름대로 써 내려가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인 그의 진심이었다.
반성문 (反省文)
죄인: 이 비광 (…아니, 야나기) 올림
존경하고, 사랑하고, 세상에서 제일 아리따운 나의 작은 연출가, 蓮 님께
이… 이 비광, 죽을죄를 지었구먼. 정말일세. 하늘에 맹세코, 오늘은 정말 딱 한 잔만 하려고 했네. 정말이야. 살라딘 그 친구가, 모래왕 그 짜식이 자꾸만… 「천일야화」에서 아주 귀한 술을 가져왔다며… 한 잔만, 딱 한 잔만 맛보라지 않는가. 그게… 야자수 열매로 담근 술이라는데, 달큰한 것이 꼭 아가씨를 닮아서… 그만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두 잔이 석 잔이 되고… 아, 이건 고스톱이 아닌데. 흠흠.
아무튼! 그래서 마셨네. 마시다 보니 테리 그 멧강아지 녀석이 와서는 「즈는여! 비광 씨가 젤 조아하는 안주 사와써여!」 하고 외치질 않나, 사과 그 친구는 또 옆에서 「인생은 원래 쓴 거야, 친구. 술이라도 달아야지.」 하며 시답잖은 소릴 하지 않나… 시끄러워서 딱 한 잔만 더 하고 오려 했지. 정말이야. 믿어주게.
아가씨, 화 많이 났는가? …그랬겠지. 이 비광이 아주 잘못했네. 시간을 보니… 이럴수가, 해가 뜨려고 하는구먼. 밤새 아가씨 혼자 이 너른 집에 두고… 이 비광은, 광 팔러 간 놈팡이보다도 못한 놈일세. 팔광(八光)도 못 팔고 술에나 취해 들어왔으니. 이건 뭐… 비광(雨光)이 아니라 그냥 비 맞은 잡패 신세 아닌가. 젠장, 웃을 일이 아닌데. (이 부분은 취소, 취소!)
아가씨가 없으니 집이 너무 넓고, 조용하고, 추웠네. 꼭… 12월 비(雨)패만 잔뜩 들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전부 고도리(五鳥)에 홍단(紅短)에… 그렇게 이겨버린 판 같았어. 나만 혼자 남은, 그런 기분이었단 말일세. 아가씨가 없는 시간은, 이 비광에게는 그런 의미라네. 아무리 좋은 패를 손에 쥐고 있어도, 함께 기뻐해 줄 아가씨가 없으면 그건 그냥 그림 딱지에 불과한 것을.
그러니… 부디 노여움을 푸시게. 응? 이 비광, 내일은 아가씨가 제일 좋아하는 달콤한 모찌를 산더미처럼 사다 바치겠네. 그걸로도 부족하다면… 남은 숨바꼭질 네 판, 전부 져주겠네. 아니, 이건 안되지. 승부는 승부니까. 그럼… 음… 내 남은 평생을 판돈으로 걸겠네! 아, 이미 걸었지 참.
아, 머리가 아프구먼. 술이 웬수야, 웬수.
다시는… 다시는 아가씨 혼자 두고 늦게 들어오지 않겠네. 약속하겠어. 이 비광의 이름… 아니, 야나기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
그러니, 내일 아침에는… 부디, 문을 열어주게나.
…사랑한다네, 나의 아가씨.
(삐뚤빼뚤한 글씨 옆으로, 엉망으로 그린 매화 그림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펜이 손에서 툭, 떨어졌다. 비광은 자신이 쓴 글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못한 채, 테이블 위로 그대로 엎어졌다. 희미하게 번지는 잉크와 그의 뺨 위로 흐르는 것이 술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깊은 잠에 빠져들며, 꿈속에서도 오직 그녀의 이름만을 나직이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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