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성 설문지
[울프독 특수 요원 정서 안정성 설문지 - 응답자: 비광(雨光)]
어디서 났는지 모를 설문지 한 장이 손가락 사이에서 화투패처럼 빙그르 돌았다. 비광은 화과자 가게 앞 평상에 걸터앉아,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펜을 입에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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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A]다른 사람이 蓮을 뚫어져라 쳐다봄 ─ 27%
이건 솔직히 답이 정해져 있구먼. 흰 기모노에 붕대를 두른 그녀는 눈에 띈다. 거리에서 한 번씩 흘끔대는 시선 정도야 웃어넘기겠다만, 그게 길어지면 이야기가 다르지. 27%라 적은 건, 내 시선만으로도 모자란 판에 남의 눈까지 얹어줄 생각이 없어서 그렇네. 자네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야 이해하네만, 보는 건 이 비광 하나면 족하지 않은가.
[항목 B]다른 사람이 蓮에게 가벼운 스킨십을 함 ─ 9%
껄껄. 숫자가 낮다고 놀라지 마시게. 가벼운 터치라 했지? 손등을 스치든 어깨를 톡 치든, 그 손이 이 비광 것이 아니라면 9%일세. 그마저도 후하게 쳐준 거라네. 자네 손가락 사이 틈은 내가 채우기로 했거든. 낙장불입이라 했잖나.
[항목 C]다른 사람이 蓮에게 진한 스킨십을 함 ─ 0%
적을 것도 없네. 0%. 포옹이든 손깍지든, 그건 내 몫이지 남의 몫이 아니야. 이 항목을 읽는 순간 이미 학군양을 부르고 있을 게야.
[항목 D]다른 사람이 蓮을 위험에 빠뜨리거나 상처 입힘 ─ 0%
펜을 쥔 손이 잠시 멈췄다.
…여기엔 농을 칠 수가 없구먼. 0%일세. 단 한 톨도 못 참네. 자네는 C급 백사 능력자라 했고, 동료 뒤에 숨는 게 특기라 했지. 그 말을 믿어주는 척하는 것도 내 일의 일부였네. 허나 누군가 자네를 해하려 든다면, 그땐 이 비광이 무대 위에서 어떤 얼굴을 하는지 보게 될 게야. 별로 곱지 않을 거구먼.
[임의 항목 E]蓮이 또 도망쳐서 숨어버림 ─ 64%
의외로 높지? 화내야 할 것 같은데 말일세. 자네가 숨으면 이 비광은 또 찾으러 가면 그만이야. 아홉 판을 그리 굴렀는데 한 판 더 못 굴리겠나. 다만 64%인 이유는, 숨더라도 같은 시계탑에서 날 기다려준다는 걸 이제 알아버려서 그렇네. 도망의 끝이 결국 내 쪽이라면, 좀 참아줄 만하지.
[임의 항목 F]蓮이 모찌 값을 또 내기로 정하자고 우김 ─ 88%
이건 거의 다 참아주네. 내기야 이 비광의 본업이 아닌가. 다만 오늘만은 예외라 88%야. 끝은 내가 사주고 싶댔으니, 이 항목만큼은 우겨도 안 통할 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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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광이 펜을 탁 내려놓고, 설문지 맨 아래에 휘갈겨 적었다.
[종합 결과]
항목들의 평균을 내보니 우습게도 숫자가 낮구먼. 허나 자세히 보시게. 자네 자신과 직결된 항목일수록 인내심이 바닥을 친다네. 즉, 이 비광이 참을성이 없는 게 아니라, 자네에 한해서만 참을성이 사라지는 게야.
다 쓴 종이를 반으로 접어, 그는 그것을 그녀의 넓은 소맷자락 안에 슬쩍 밀어 넣었다. 가로등 빛에 호박색 눈동자가 잔망스레 휘었다.
채점은 자네가 하시게. 답은 이미 다 나와 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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